본문 바로가기
다이어리

무도,무술,무예

by 세계무술 2016. 11. 10.



우선 전통무예를 말함에 있어 무예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무예, 무술, 무도 란 말을 자주 듣지만 크게 그 차이점에 대해 깊이 인식하거나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용하여 온 명칭의 정당성과 연관되어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일 것이다. 이해가 편하도록 영어로 그 차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⑴ 무도 way of the warrior

⑵ 무술 martial skills

⑶ 무예 martial arts

이 모두가 정신적(심성적)인 측면, 기술(기교)적인 측면, 표현적(예술적)인 측면 을 모두 중요시하고 있지만 각 나라별 그리고 쓰임이 많았던 성격에 따라 그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⑴ 무도 way of the warrior

무도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단어로 일본에서 주로 많이 사용되어 왔고 일본 문헌 자료에도 많이 표현되어 온 단어이다. “道”라는 표현은 명확히 일본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개념이다. 여기서 '道'가 표현하는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평화의 마음, 평등의 마음, 폭력이 아닌 건강 지향으로 개념으로 “도”라는 것이 사용된다. 즉, 19세기 일본은 개화기를 맞으면서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이때 “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모든 것에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명치유신 이전 막부의 냄새를 제거하고 새로이 태어난 국가의 모든 내용을 신문물적 내용과 형식으로 채우려 함에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차를 마시는 “다도”도 이에 속한다. 여기서 무도(武道)라는 말이 새로이 탄생하게 되고 이후 유술이 유도(柔道)가 되고, 검술이 검도(劍道)로 변형된 것이다. 하지만 명치유신 이전의 자료에는 “道”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즉, 엄밀하게 말하면 “道”라는 것은 일본에서 만들어 졌으며, 그 의미성 또한 일본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탄생한 새로운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지금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무술에 “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제 점령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6.25라는 현실적 고난이 이를 바로 잡고 올바르게 나아가기에 너무 어려웠었다는 것, 그리고 일본의 문화적 점령이라는 큰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정서와 전통문화에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임에 이를 서로 비판하거나 무시하기에 앞서 서로간의 이해와 타협으로 우리나라 전통무예 발전을 도모함이 옳을 것이다.

 

⑵ 무술 martial skills

무술은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단어로 중국 전통 문화를 기초 이론으로 삼고 도수(徒手, 권술과 산타)와 기계(器械, 병기술) 공격과 방어 동작을 주요 단련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공격(功法), 투로(套路), 격투(格鬪)운동 등 세 종류의 운동형식으로 구성된 체육종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 내용보다 중국에 바탕을 두고 널리 쓰여 일본과 우리나라에까지 그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무술(武術)이라는 말은 제일 처음으로 남조 양소명 태자 소통(南朝 梁昭明 太子 蕭統 501-531년)의 문선(文選)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제일 처음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한시 구에 “偃閉 武術(언폐 무술)” “闡揚 文今(천양 문금)”이 있는데 이것은 이른바 무술이 일반적으로 군사기술을 가리키는 것이었음 을 말해준다. 고대에는 무술이라는 언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청 말 민초시대(淸末民初)에 이르러 비로소 날로 광범위하게 응용을 가져왔다. 신해혁명(新咳革命) 후 마량편(馬良編)의 무기단련법에서 중화신무술(中華新武術)이라 칭하였고 1915년 육대악(陸大諤)이 신보(申報)에 발표한 풍완정(馮婉貞)의 한 구절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좋아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때 무술은 이미 더 이상 단순한 군사무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전통체육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어떤 사람들은 국술(國術) 혹은 공부(功夫)라는 이름으로 칭하였지만 줄곧 사용된 명칭은 무술이다.

 

⑶ 무예 martial arts

무예는 무술(武術) 또는 무기(武技)라고도 한다. 고대 수렵시대의 궁사(弓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수렵기술이나 전투기술에 의해서 발달하게 되었으며, 특히 동양에서는 농경생활이나 종교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각종 경기나 무속(巫俗) ·예법 등에 도입되어 발달하였다. 또한 무예를 예능의 하나로 즐기는 풍습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 문존무비(文尊武卑)의 사상이 만연되어 특별한 발달을 보지 못하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무술 진흥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어 중국으로부터 여러 무예가 도입되었다. 1594년(선조 27) 명(明)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으로부터 장창(長槍) 등의 이른바 무예 6기(武藝六技)가 도입되고, 영조(英祖) 때 새로이 죽장창(竹長槍) 등의 12기가 들어와 십팔기(十八技)가 되었으며, 정조(正祖) 때 간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는 여기에 다시 기예(騎藝) 등의 6기를 더하여 24기를 수록하였다. 또한 의미적으로 우리의 무예는 보다 더 넓은 의미를 담는 단어로 단순히 싸움의 기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예 (藝)", 즉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목적과 의의를 둔 다는 것에 비추어 단순히 체력 단련이나 스포츠 등과는 명확히 구분을 지었다. 사실 스포츠란 무예의 한 측면으로 겨루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스포츠화 시킨 것이 바로 "Martial Sport 또는 Combat Sport"인 것이다. 한편 어떤 무예는 불교, 도교 등의 종교나 철학적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였고, 다른 어떤 무예는 실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무도에서 “도”란 하나의 소우주를 뜻하는 말이라 볼 수 있고 일본의 무술 수련자들을 보면 검도의 내려치기 한 동작, 가라테의 지르기 한 동작에서 심오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고자 하는 듯 한 인상을 받게 된다. ‘베는 동작 한번을 연습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탐구 한다’고 할까 아니면 ‘한걸음 내딛는 동작에서 인생을 느낀다’고 할까! 어찌 보면 평생을 수련해온 노검사의 내려치기 한 동작에서 그의 삶과 철학을 엿 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접 칼을 섞지 않고 꽃가지를 베어 보냄으로써 서로의 실력을 겨루어 봤다는 무사시의 일화에서도 그런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의미와 견주어 우리 전통에서는 무를 예(藝)로 보았고 음악, 서예, 무용, 도예, 미술 등과 같은 예술의 경지로 보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와서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한 것도, 다른 예술을 천하게 본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음악, 서예, 무용, 도예, 미술과 같은 예술이 다른 어떤 것들에 비해 하등한 가치가 아님이 너무도 당연하듯, 무예라는 개념이 격이 떨어진다거나 다른 어떤 것들보다 하위의 개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육체적인 활동을 정신적,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볼 때, 우리 무예의 본질은 몸의 수련을 통하여 정신적인 혹은 영(靈)적인 무엇 인가로의 승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찰로써 무예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의 성격에 아주 적합한 용어 인 것이다.

 

위와 같이 설명함에 있어 물론 한, 중, 일 삼국의 무예가 극단적으로 한 가지 성격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무예, 일본의 무도, 중국의 무술은 삼원색(三原色)의 세 개의 원처럼 모든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각각 그 나라 만에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무술이든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하고 단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각자가 익힌 무예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발전하고자 하는 노력도 무예 수련의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더하여 무예를 수련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것도 무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는 큰 의미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육체적인 수련 없이 하루를 사고와 고찰로만 전부 보낸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무술, 무도, 무예는 경지의 높낮이를 가진 상하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댓글